일상

비혼주의자가 아빠가 되고나서 느낀 점

권진석

2023-01-29

작성,

2023-01-29

수정

오늘 1월 18일에 태어난 제 아이가 퇴원했습니다. 제 아이는 37주 2일에 제왕절개로 태어났는데,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NICU(신생아중환자실)에서 열흘 간 입원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남들이 임신, 출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제 일이 되고보니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출산을 결정했던 이유

제가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다음 단계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의 관계의 시작은 연애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결혼이었고요. 결혼도 충분히 유의미하고 재미있었지만, 결혼 생활은 5년, 10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 부모로서의 관계는 그보다는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애가 태어났을 때, 돌이 지났을 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저희 두 사람이 함께할 경험 역시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내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애를 갖지 말자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저는 그때마다 "지금 당장 애를 가질 필요는 없지만, 평생 애 없이 살 결정은 못하겠다."고 했었죠. 이 말에 아내는 오히려 애를 빨리 갖자고 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정말로 즐겨본 기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즉 뭔가를 충분히 즐겨봤다고 말하기 위해 반드시 경험해야하는 리스트가 있죠. 가령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가봐야할 장소, 축제, 활동들이 있죠. 저에게 임신, 출산, 육아가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인생을 풍부하게 살아보고 싶었고, 이것들은 풍부한 경험을 위해 경험해야할 것들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자가 젊은 여자를 찾는 현실적인 이유

임신을 준비하다보니, 어린 아내를 찾는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 몇 가지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로 여자는 남자보다 임신에 대한 나이 제약이 더 큽니다. 만 35살을 기준으로 노산을 구분짓습니다. 여성의 나이가 만 35세에서 멀어질수록 임신 성공률이 많이 낮아지게 됩니다. 이는 시험관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난자의 비율이 줄어들게 되거든요. 미리 난자를 냉동해두었다면 상황은 많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이 냉동 난자를 충분히 준비해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육아에 있어 남편의 경제력이 더 중요합니다. 30~40대에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경제력이 좋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산을 모을 시간이 많았고, 수입을 키울 시간도 많았거든요. 임신과 출산에서 여성의 희생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큽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가정의 수입은 남성이 도맡아야하죠. 저희의 경우, 어짜피 산후조리로 쉬어야할 아내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저는 그동안 외벌이로 돈을 벌어야합니다.

여성은 남성만큼 나이의 장점을 활용할 수 없고, 대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단점만 더욱 부각되기에 한 살이라도 더 어린 여성이 더 많이 선호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근거들이 제 아내와의 결혼생활의 어떤 것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저희의 임신은 비교적 순탄했습니다. 임신도 쉽게 잘 되었고, 유산, 기형아검사, 임신당뇨 등 어떤 이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유산이 발생한다는 12주까지 마음을 졸이며 지냈었고, 새로운 검사를 할 때마다 늘 걱정스럽긴 했습니다. 이슈가 없다한들 마음마저 평온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출산은 임신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마지막 두 달, 아내는 생활하는 모든 게 힘들었습니다. 잠자고, 걷고, 숨쉬고, 앉고, 밥 먹는 게 모두 힘들었습니다. 이 모든 힘든 것들이 커져버린 배 때문이었으니,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다시 모든 게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애가 나오니 아내는 아픕니다. 자연분만을 하든 제왕절개를 하든 살을 째는 건 어쩔 수 없거든요. 회복을 해야합니다. 애가 나와도 몸이 무거운 것도 여전합니다. 임신하면 체중이 10kg이상 불어나는데, 아기 무게는 3kg 정도밖에 안되거든요. 출산해도 자궁에는 아기를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아직 남아있고, 따라서 자궁도 여전히 큽니다. 그래서 배도 여전히 나와있습니다. 출산한 몸은 서서히 임신 전의 상태로 돌아가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유 수유를 준비해야합니다. 수술만큼 아픈 게 젖몸살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산후조리원에서 마사지를 잘 해줍니다. 덕분에 제 아내는 상태가 금방 호전됐지만, 출산 후 가장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모유를 만들 수 있는 신체가 되면 4시간마다 모유를 빼줘야합니다. 저희 아이는 모유를 직접 먹을 수 없는 상태라 유축했습니다.

출산 이후, 더 큰 난관이 있을 수 있다

저희 아기는 37주 2일에 태어났습니다. 체중은 3.3kg으로 꽤 큰 편이었고, 머리가 유독 커서 출산을 서둘렀습니다. 38주에 잡혀있던 수술을 당겼었죠. 그런데, 머리만 컸고 다른 장기의 성장은 빠르지 않았나봅니다. 태어난 날 숨을 잘 쉬지 못해 NICU(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약 10일 정도 이 곳에서 지낸 후 퇴원했죠. 이를 경험하고 보니, 현대 의학이 태아의 성숙도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임신 기간, 몸무게, 키 정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희 아이의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폐가 1~2주 가량 성장이 늦은 아이처럼 보인다고 하셨었죠. 

저희처럼 아이를 NICU에 보낸다면 신경써야할 게 더 생깁니다.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의 일정을 조정해야하고, 아이의 치료를 위해 대응해야할 것 생깁니다. 출산 당일, 아내의 수술에 대한 대응, 아이의 치료를 위해 동의하고 알아야 할 내용들, 수술을 마친 아내가 놀라지 않도록 상황을 전달하는 일까지.. 참 정신 없이 흘러 갔던 것 같습니다. 아내 역시도 밤마다 슬퍼하며 보냈기도 하고요. 작은 아기의 온 몸에 관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NICU에 보내는 일이 엄청 흔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의 삶, 내 인생의 다음 단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과거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몰랐던 것들을 정말 많이 경험했습니다. 임신을 염두하고 계신 분이라면 준비라는 핑계로 미루기보다는 일단 서둘러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 마주하는 현실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를 수 밖에 없거든요. 저 역시 경험했던 대부분은 그 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고요. 사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육아가 더 기대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매일매일이 다를테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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